1. 혼돈 속으로
몇 년간 일본에서 지내고 돌아온 지 며칠 안되었습니다.
오기 전부터 슬슬 한국 뉴스를 보기 시작했는데 '아, 또 시작되었구나. 이 혼돈 속에 다시 들어가야 되는구나.' 했습니다.
일본은 정치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훨씬 더 적어 보입니다. 투표율도 낮습니다.
한국도 그렇겠지만 일본도 뉴스만 켜지 않으면 아주 평화롭고 조용합니다.
마트가 문을 여는 시간에 주부들이 하나같이 자전거를 타고 나와 부지런히 오카이모노(お買い物쇼핑)를 합니다. 오전이면 카페 앞에 또 자전거가 쫙 주차되어 있습니다. 아이들을 등교시킨 어머니들의 브런치 모임입니다.
좁은 강변을 따라 반려견과 산책을 하고, 벌써 이른 시간에 상점이 문을 닫으며, 캄캄하고 조용한 밤을 보냅니다. (저는 작은 도시에 살았습니다.) 잦은 지진이 나도, 사람들은 익숙한 듯 태연하고 질서 있게 움직입니다.
표면적으로는 큰 문제가 없어 보였습니다.
2. 거짓 평화
나 꽤 고요하고 평화로운 시간을 지내왔구나 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애써 뉴스를 보지 않고 귀를 닫아놓았으니 겪어왔던 시간은 거짓된 평화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세에 무지하고 무관심하니 안전한 헤이안지다이(平安時代일본의 옛 시대)라고 착각했습니다. 들여다보면 거기도 이것저것 수두룩 했을 텐데 말입니다.
그래도 그곳은 적어도
이곳만큼 전체주의자들에게 삼켜지진 않아 보입니다.
지난 5년간 나라를 훌훌 말아 잡숴 거덜을 내신 정권을 겪어도 국민들이 변화가 되질 않으니 헛웃음도 나옵니다. 그의 행보에 조롱하던 일본인들 앞에서 얼굴이 시뻘게진 일도 몇 번 있었습니다.
총선이 끝나고 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의 사태는 개인의 종교를 바꾸는 정도의 난이도다.’
아는 기자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방법이 없다. 세뇌된 군중은 버리고 가되 새로운 세대를 키워야 한다.’
3. 아래로부터의 변화
“진심으로 바라는 바는 우리나라의 무식하고 천하며 어리고 약한 형제자매들이 스스로 각성하여 올바로 행하며, 다른 사람들을 인도하여 날로 국민정신이 바뀌고 풍속이 고쳐져서 아래로부터 변하여 썩은 데서 싹이 나며, 죽은 데서 살아나기를 원하고 또 원하는 바이다.” -이승만, [독립정신]
위가 변화하기 어렵다면 시간이 더 들더라도 맨 아래에 있는 저부터라도 변화되어야겠습니다.
감정의 호소만 가지고는 단단히 세뇌된 사람들에게 설득이 어렵습니다.
적어도 자유민주주의의 역사와 사상에 대한 기본 이해와 핵심을 알고, 이것을 나의 언어로 풀어놓을 수 있어야 싸움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저는 정치에 문외한이며 책을 좋아하지도 않습니다만 이제부터 무지렁이 그룹에서 탈출을 해보려고 합니다. 배우고 나누는 과정에서, 선배님들이 힘써 얻은 자유의 가치를 아는 세대들이 일어나도록 어떻게든 행동하겠습니다.
특별한 목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과정 중에 어떤 긍정적인 열매가 나타나길 바라며 뜻이 같은 이웃들도 만나길 바랍니다.
저 선구자의 말대로 스스로 각성하여 올바로 행하며 다른 사람을 인도하면, 혹시 모릅니다.
국민 정신이 바뀌고 풍속이 고쳐져서 변하여 싹이 날지도.
이곳이 열심히 공부하고 나누는 전시학교가 되길 바랍니다.